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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체 만드는 사람들

발사체 만드는 사람들

엔지니어의 혼이 담긴 스피닝(spinning) 기술

  • 이름 : 오요한
  • 작성일 : 2018-08-01
  • 조회수 : 28

“최대한 얇고 튼튼하고 정밀하게”


손으로 흙을 빚고 물레를 돌려 원하는 모양을 만듭니다. 고온의 가마에 굽고 말리고 그림을 그려 넣습니다. 도공(陶工)의 손은 거칠어도 도자기를 빚는 손길은 한없이 섬세하기만 합니다.
도자기 모양이 완성되면 그림을 그려 넣고, 조각을 새기고, 색을 칠합니다. 유약을 바르고 또 굽고 말립니다. 한겨울에도 도공의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립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이 보면 완벽하고 더없이 아름다워 보여도 도공의 예리한 눈빛은 작은 이물질 하나, 완벽하지 않은 곡선을 찾아냅니다. 아무리 힘든 과정을 거쳤더라도 이런 흠결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망치를 들고 도자기를 깹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하나의 도자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빚고 굽고 말리고 유약을 바르고 다시 굽고 말리는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사진=다큐멘터리 ‘천년의 여정’ 홍보영상 캡처>


도자기는 이처럼 힘겨운 공정을 거쳐 완성됩니다. 완벽한 작품이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합니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도자기를 보며 감탄하는 이유는 이렇게 도공, 혹은 도예가(陶藝家)의 혼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도자기가 도공의 혼으로 탄생하듯 우주 발사체도 엔지니어의 혼이 담긴 공정이 적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시도와 실패의 반복, 작은 오차나 스크래치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작업, 그러면서도 기계가공공정 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없는 고난도의 작업이 우주 발사체 개발 과정에 숨어 있습니다. 우주 발사체 구조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최대한 얇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는 추진제 탱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첨단 기술과 엔지니어의 경험이 결합한 ‘스피닝(spinning)’ 기술이 중요하게 쓰이는 곳이 바로 추진제 탱크이기도 합니다. 추진제 탱크를 만드는데 스피닝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공이 혼을 담아 도자기를 빚듯, 엔지니어의 혼을 담아 탄생하는 한국형발사체의 추진제 탱크와 여기에 쓰이는 스피닝 기술을 만나보겠습니다.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혼처럼 한국형발사체에는 엔지니어의 혼이 담겨 있다. 사진은 스피닝 공정을 거치고 있는 추진제 탱크돔


*로켓 구조물의 70~80% 차지하는 추진제 탱크

스피닝에 앞서 이 기술이 중요하게 쓰이는 추진제 탱크를 먼저 살펴볼까요? 극저온의 산화제와 상온의 연료를 저장하는 추진제 탱크는 발사체 외형의 70~80%를 차지합니다. 다시 말해 우주 로켓 맨 상단의 페이로드 부분을 제외하면 발사체 대부분은 연료와 산화제를 싣는 추진제 탱크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발사체의 몸통이 바로 추진제 탱크이기도 합니다.


발사체 구조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추진제 탱크. 사진은 한국형발사체 구조도.


이렇게 발사체 대부분을 추진제 탱크가 차지하다 보니 추진제 탱크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추진제 탱크 경량화가 곧 발사체의 성능과도 직결되는 것이지요. 무게를 가장 손쉽게 줄이는 방법은 크기를 줄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추진제 탱크의 크기는 발사체의 임무에 따라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는 만큼 크기를 줄여 무게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 추진제 탱크의 두께를 얼마로 할 것이냐 정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두께 역시 비행 압력 등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변화를 주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또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 합니다.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발사체(KSLV-Ⅱ)의 추진제 탱크는 가볍고 내구성이 좋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게를 더 줄여야 합니다. 알루미늄 합금이 아무리 가벼워도 추진제 탱크 크기의 구조물은 그 자체로도 상당한 무게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직경은 3.5m지만 두께는 불과 2mm

결국, 추진제 탱크의 무게를 줄이는 최후의 방법은 비행 압력을 견디는 한도에서 최대한 얇게 만드는 것입니다. 추진제 탱크는 크게 몸통에 해당하는 실린더와 머리에 해당하는 돔으로 구성됩니다. 실린더 벽의 두께는 2~3mm 정도에 불과하죠. 앞서 설명한 것처럼 추진제 탱크의 외벽은 곧 우주 로켓의 표면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이렇게 얇게 만들어야 하고, 아무리 강한 소재를 썼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정도 두께의 구조물이 우주로 날아갈 때 로켓에 가해지는 하중을 견디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추진제 탱크 실린더의 내벽은 삼각형 격자(isogrid) 형태의 보강 립으로 만들어집니다. 실린더를 잘라 옆에서 보면 평면이 아니라 요철(凹凸)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실린더 벽의 두께는 2~3mm에 불과하지만, 우주로 비행할 때 받는 내외부의 하중을 충분히 견뎌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원통형의 실린더가 만들어지면 위아래로 돔을 붙입니다. 돔의 지름은 한국형발사체 1단의 경우 3.5m(2·3단은 2.6m)에 달합니다. 돔의 높이는 0.9~1m 정도입니다. 실린더와 마찬가지로 크기는 이렇게 크지만 두께는 2.1~2.7mm 정도입니다. 압력을 더 받는 하부 돔의 두께가 3mm 정도로 다른 부위보다 다소 두껍지만, 이 정도 크기의 알루미늄 합금 구조물을 이렇게 얇게 만들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한국형발사체의 추진제 탱크 실린더 내벽. 격자 구조 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피닝 공정, 엔지니어의 경험이 좌우

여기에 쓰이는 제작기술이 바로 ‘스피닝(spinning)’입니다. 스피닝은 주로 축대칭(어떤 축을 중심으로 회전해도 원래 같은 형이 유지되는 대칭성)이면서 두께가 얇고 속이 빈 형태의 금속 제품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공정입니다. 이러한 제품은 대부분 크기에 비해 두께가 얇은 특징을 지니고 있어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료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피닝 공정을 많이 사용한답니다.
한국형발사체 1단 추진제 탱크의 돔 두께가 2.1~2.7mm라고 했는데요. 스피닝 가공 전 재료의 두께는 15mm 정도에 달합니다. 2단 추진제 탱크의 들어가는 재료도 12.7mm에서 스피닝 공정을 시작하지요. 스피닝의 핵심은 일정한 곡률을 만들면서 재료를 성형하는 것입니다.


15mm 두께의 원판을 기계에 밀착시키고 롤러의 궤적을 제어해서 원하는 두께와 형상이 만들어질 때까지 성형하는 것인데요. 바로 이때 엔지니어의 경험과 직관이 큰 변수로 작용합니다.
스피닝 공정의 최대 난점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없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크기와 두께로 할지 등의 공정을 개발하고 이것을 프로그램화해서 장비에 입력하면 스피닝은 자동으로 진행되지만, 실제 스피닝 과정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합니다. 이것을 전부 해석해서 시뮬레이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죠. 그래서 스피닝 공정에서는 엔지니어의 경험이 크게 작용합니다.



*수십 번 실패 반복한 끝에 완성


완벽한 돔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축적한 경험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문제는 지름 3.5m의 추진제 탱크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죠. 액체추진과학로켓 KSR-Ⅲ 개발 당시 직경 1m, 그리고 나로호(KSLV-Ⅰ) 개발 당시 선행연구로 진행한 직경 2.9m의 돔을 만들어본 것이 유일한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우리 연구원 연구진과 기술진만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갖고 있습니다. 현재 1단 추진제 탱크와 2·3단 추진제 탱크는 우리 연구원과 국내 기업이 협력해 개발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단 추진제 탱크는 개발을 완료하고 현재 지상 시험을 마쳤으며, 3단 추진제 탱크는 현재 개발 중이지요. 2단 추진제 탱크 돔을 만들 때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스피닝이 잘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롤러를 떼보면 돔이 떠 있거나 심지어 구부러지고 찢어지곤 했습니다. 홈이나 스크래치도 나고요. 개발 초기에 이런 시행착오 과정을 한 4개월 정도 겪었는데, 이때 사용한 원판만 스무 개가 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원판 한 장당 서너 번은 재활용했어요. 2단 추진제 탱크 돔을 만드는 스피닝 공정은 이런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이제는 안정화되었습니다.”


*한국형발사체 만드는 ‘엔지니어의 혼’으로

스피닝 장비에 원판을 올려놓고 돌리며 미세하게 성형하는 작업은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만큼이나 세심한 주의와 집중이 필요합니다.
완성했다고 살펴보면 곳곳에서 흠집이나 하자가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했더라도 도자기처럼 쉽게 깨서 버릴 수는 없지만, 그런 실패와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완성된 결과물을 얻는 것도 비슷합니다. ‘도공의 혼’이 아니라 기술과 경험이 결집된 ‘엔지니어의 혼’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KSR-Ⅲ에서 나로호(KSLV-Ⅰ)에 이어 한국형발사체(KSLV-Ⅱ)로, 로켓의 크기와 성능만큼이나 스피닝 공정에 필요한 기술과 경험도 커지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축적한 그 기술과 경험은 다시 후배 연구원들에게 전수되면서 더 큰 발사체, 더 먼 우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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