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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체 포커스

한국형발사체엔 밸브가 600개나 있다?

  • 이름 : 오요한
  • 작성일 : 2018-06-11
  • 조회수 : 293

가정에서 수도나 가스 밸브에 이상이 생기면 심각한 불편을 겪게 됩니다. 휘발유나 경유, LPG로 움직이는 자동차도 밸브가 고장 나면 당장 차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액체나 기체가 통과하는 곳에 달려 있는 밸브(Valve)는 유체의 흐름을 조절하고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요. 등유를 연료로, 액체산소를 산화제로 사용하는 액체로켓엔진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대기권을 뚫고 우주까지 비행하는 로켓용 밸브와 지상에서 사용하는 밸브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큽니다. 지난겨울 강추위로 수도 밸브가 얼어 용수를 공급받지 못한 집이 속출했다는 뉴스를 많이 접했을 텐데요. 그때 온도가 -10℃ 안팎이었습니다. 한국형발사체에 산화제로 사용되는 액체산소 온도는 무려 -183℃에 달합니다. 엄청난 고온과 진동, 압력도 견뎌야 합니다. 그런 밸브가 한두 개가 아니라 무려 600개나 들어갑니다.


밸브는 유체의 흐름을 조절하고 차단한다. 사진은 보일러용 밸브. 로켓엔진용 밸브는 이보다 훨씬 더 극한의 환경에서 작동한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발사체 성능을 좌우하는 밸브의 신뢰도

액체(등유, 액체산소) 공급계, 기체(질소, 헬륨) 공급계에 들어가는 밸브는 어른 손가락만 한 크기부터 머리만 한 것도 있습니다. 가벼운 것은 약 50g에 불과하지만, 어떤 밸브는 27kg이 넘습니다. 외국 대형 발사체의 경우 이런 밸브가 1,000여 개에 달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밸브는 수동이(수도 밸브처럼 손으로 열거나 닫는) 아니라 모두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결국, 밸브의 신뢰도가 발사체의 성능을 좌우합니다. 밸브는 우주발사체 발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많은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밸브 제작에 관여한 연구진은 한국형발사체 액체추진기관과 로켓엔진 시험 과정에서 누구보다 긴장을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받을 때도 적지 않지요. 다른 곳에 문제가 있어도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곳이 밸브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해당 연구진은 이렇게 호소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왜 나만 갖고 그래!”


*험난했던 밸브 자체 개발…100% 국산화 성공

연구진이 더 긴장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한국형발사체에 들어가는 밸브가 모두 자체 기술로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크고 작은 밸브 600개를 모두 국산화에 성공했지요. 우리 자체 기술로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크지만, 그만큼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한국형발사체 개발 전체가 그렇지만, 액체로켓 밸브의 국산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1998년 국내 최초의 액체추진 로켓 KSR-Ⅲ을 개발하면서 밸브의 국산화도 시작됩니다. 그러나 당시 밸브의 신뢰도는 100% 기준으로 하면 50%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밸브 국산화를 위한 기술 개발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첫째, 아예 물건을 사 와 분해해서 거꾸로 설계하기. 선행개발 초기 때 이야기입니다. 밸브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중에 한 연구원이 우연히 해외 발사체에 사용된 밸브를 구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밸브를 분해한 뒤 다시 설계해서 국내 업체를 통해 최대한 똑같이 만들어봅니다. 국산화를 위한 연구진의 절실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연소기 산화제 개폐밸브 단면도.


둘째, 설계를 해외에 맡긴 뒤 이 설계도면을 국산화하기. 번역만 해서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천만에요.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설계도만 보고 제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발사체인 아틀라스 시리즈를 개발할 때였는데요. 러시아로부터 액체로켓엔진 설계도를 구매해 똑같이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5년 동안 시도했지만 실패! 결국, 러시아 RD-180 액체로켓엔진을 들여와 발사체를 완성하게 됩니다. 우리 연구진도 이런 과정을 거쳐 밸브 하나를 국산화하는데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극한 환경 견디며 무게·크기도 줄여야

이렇게 밸브를 수입해서 분해하고, 설계도면을 수입해 설계도 자체를 국산화하고, 때로는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으로 도전하면서 밸브 하나하나를 정복했습니다. 수많은 밸브 중에 역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산화제 충전배출 밸브, 산화제 벤트·릴리프 밸브 등 산화제 계통의 밸브였습니다.

밸브에 주로 쓰이는 소재는 스테인리스강인데요. 길이 1m의 스테인리스강을 -183℃의 극저온 액체산소에 담그면 약 3mm 정도가 수축합니다. 로켓엔진 및 추진기관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압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수를 막는 기밀(氣密) 매우 중요한데요. 수도 밸브에서 1mm의 틈으로 누수만 생겨도 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로켓엔진에서 3mm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산화제용 밸브는 이런 수축까지 고려해 설계·제작하게 됩니다.

또 하나 연구진을 괴롭혔던 것은 무게·크기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극저온, 고온, 고압 등을 견디면서도 단 1g이라도 줄여야 합니다. 본체를 정밀하게 깎아낸 뒤 다시 테스트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흐르는 유체의 양은 같은데 두께가 0.5mm에 불과한 밸브도 있고요. 지상에서 사용하는 밸브와 규격은 같은데도 무게는 10분의 1에 불과한 밸브도 있습니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액체로켓용 밸브.


크기도 갈수록 작아져 한번 장착한 밸브를 교체하거나 수리하는 과정은 고난도의 작업입니다. 밸브 관련 기술진과 연구진은 몸을 비틀고 팔을 뒤틀어 작업한 경험을 모두 갖고 있죠. 농담처럼 “요가 여러 번 했다”고도 말합니다.

국산화 과정에선 산업체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발사체에 사용될 수 있는 극한 조건에서 작동하는 밸브를 만들었던 경험이 없었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밸브만 놓고 시험했을 때는 문제가 없더라도, 조립 후 시스템 레벨에선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았지요. 하지만 연구진과의 지속적인 협업 끝에 국산화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산업체의 기술력도 예전보다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밸브 중 일부는 벌써 산업용으로도 파급되어 사용되기도 하고, 기술이전을 받고 있는 산업체도 있습니다.
아직 우리 발사체 개발이 양산 단계까지 접어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산업체가 큰 이윤을 얻을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독자 발사체 개발이라는 커다란 목표 달성을 위해 산업체들이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습니다. 올해 10월에 발사가 계획된 시험발사체에 사용하는 75톤 급 액체로켓엔진에는 총 49개, 그 외의 추진공급계에는 총 55개의 밸브가 들어가는데요. 지난해 말 실시한 시험발사체용 엔지니어링 모델 종합시험에서는 3개의 밸브에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발견되었습니다.
엔지니어링 모델 종합시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실제 발사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신뢰도를 더 높여야 합니다. 시험발사체는 물론 한국형발사체 본 발사까지 원인을 진단하고 성능과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반복하게 됩니다. 힘들어도 밸브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진의 ‘요가’도 계속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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